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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 어민 강제북송 2심 판결, 정의용·서훈 집행유예|정의는 누구에게나 같은 절차를 보장할 수 있는가

모아에디터 2026. 10. 21. 18:03

 

 2019년 발생한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 대해 항소심 법원이 1심보다 무거운 형을 선고했습니다. 정의용 전 국가안보실장과 서훈 전 국가정보원장은 각각 징역 1년 6개월에 집행유예 3년을 선고받았습니다.

 

 이번 판결의 핵심은 형량 변화에만 있지 않습니다.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는 북한 주민에게도 어떤 권리가 인정되는지, 국가의 안보 판단은 어디까지 사법적 심사를 받아야 하는지가 주요 쟁점입니다. 2026년 10월 21일 선고 및 당일 보도를 기준으로 사건과 판결의 의미를 정리해 보려 합니다.

 

 

■ 한눈에 보기

 서울고등법원 형사15-3부는 정의용·서훈·김연철 전직 세 사람에게 징역형의 집행유예를 선고했습니다. 반면 노영민 전 비서실장은 공모나 북송 결정 관여가 충분히 인정되지 않는다는 이유로 무죄 판단을 받았습니다. 정의용·서훈·김연철 측은 판결에 반발하며 상고 의사를 밝혔습니다.

 

 

■ 왜 화제가 됐나?

1. 선고유예에서 집행유예로, 무거워진 형사 책임

 선고유예와 집행유예는 이름이 비슷하지만 서로 다른 제도입니다. 선고유예는 유죄를 인정하면서도 형의 선고를 미루는 것이고, 집행유예는 형을 선고한 뒤 일정 기간 그 집행을 미루는 것입니다. 두 제도 모두 무죄와는 구분됩니다. 이번 사건에서는 세 사람에 대한 판단이 선고유예에서 징역형의 집행유예로 바뀌었습니다.

 

2. 안보 판단과 기본권 보호의 경계

 당시 정부는 중대한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판단한 어민들이 북한이탈주민 보호 대상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입장이었습니다. 그러나 항소심 재판부는 보호 대상에서 제외되는 문제와 본인 의사에 반해 북한으로 돌려보낼 수 있는지는 별개라고 판단했습니다. 국가안보와 관련된 정치적 판단이라는 이유만으로 기본권 침해에 대한 사법심사를 피할 수 없다고 본 점도 주목됩니다.

 

 

■ 핵심 내용

1. 북한 주민의 국민 지위와 권리 침해를 인정

 항소심은 북한 주민에게 대한민국 국민 지위가 인정된다는 전제에서 강제 북송의 위법성을 판단했습니다.

재판부가 문제 삼은 것은 범죄 혐의에 대한 도덕적 평가를 넘어, 국가가 어떤 법적 근거와 절차에 따라 사람의 신체와 권리를 제한했는지였습니다. 국내 법령과 절차에 따라 권리를 행사할 기회를 차단했는지가 사건의 중요한 쟁점이었습니다.

 

2. 신중한 법률 검토 없이 진행된 북송을 지적

 재판부는 법적 근거를 신중하게 검토해야 한다는 실무 의견이 있었음에도 짧은 기간에 북송 결정과 집행이 이뤄진 점을 지적했습니다.

 또한 북송에 동원된 하급 공무원들이 겪은 정신적 충격과 이미 국내에 정착한 탈북 주민들에게 미친 불안까지 판단에 언급했습니다. 다만 이례적인 상황에서 판단해야 했던 사정과 피고인들의 연령 등은 양형에 고려했습니다.

 

3. 노영민 전 비서실장의 책임은 다르게 판단

 같은 사건으로 기소됐더라도 모든 피고인에게 같은 결론이 내려진 것은 아닙니다.

 항소심은 노영민 전 비서실장이 관련 회의를 주재하고 법률 검토를 지시한 사정과, 실제 범행을 공모하거나 북송을 결정한 책임을 구분했습니다. 사건 전체에 대한 평가와 각 개인의 형사책임은 별도로 살펴야 한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목입니다.

 

 

■ 관련 배경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은 2019년 11월, 동료 선원 16명을 살해한 것으로 지목된 북한 어민 2명이 귀순 의사를 밝혔지만 북한으로 송환되면서 발생했습니다.

 이후 당시 의사결정에 관여한 전직 정부 관계자들이 직권남용 등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습니다. 이번 재판은 어민들의 살인 혐의 자체에 대한 형사재판이 아니라, 한국 정부 관계자들의 북송 결정과 집행이 적법했는지를 다룬 재판이라는 점을 구분해야 합니다.

 

 

■ 에디터’s 뷰: 정의는 누구에게나 같은 절차를 보장할 수 있는가.

 ‘탈북어민 강제북송’ 사건에는 두 가지 질문이 겹쳐 있습니다. 중대한 범죄 혐의를 받는 사람들로부터 공동체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 그리고 국가가 그들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지켜야 할 법적 한계는 무엇인가. 각각 공동체의 안전과 국가권력의 한계에 관한 질문입니다. 정의로운 판단을 위해서는 두 가치를 함께 지킬 수 있는 원칙을 찾아야 합니다.

 

 존 롤스의 『정의론』은 이러한 문제를 생각할 때 유용한 출발점을 제공합니다. 롤스가 제시한 ‘무지의 베일’은 자신이 사회에서 어떤 지위와 조건을 갖게 될지 모르는 상태에서 공정한 원칙을 선택하도록 하는 사고실험입니다. 자신의 유리한 처지를 미리 알고 규칙을 정하면 그 규칙이 특정인에게 유리하게 기울 수 있으므로, 그러한 정보를 가린 채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기준을 찾자는 것입니다.

 

 이 관점을 이번 사건에 적용해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범죄 피해자의 가족이 될지, 혐의를 받는 사람이 될지, 결정을 내려야 하는 공직자가 될지 모른다면 어떤 제도를 원할까요. 범죄를 철저히 조사하고 피해자를 보호하면서도, 혐의를 받는 사람에게 방어할 기회를 보장하고 국가의 결정에 법적 근거를 요구하는 체계일 것입니다.

 

 기본권은 선량한 사람에게만 주어지는 보상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향한 비난이 크다는 이유로 권리를 배제할 수 있다면, 그 권리는 여론에 따라 흔들리게 됩니다. 혐의가 중대할수록 엄정한 수사가 필요하지만, 국가가 선택할 수 있는 수단 역시 법의 통제를 받아야 합니다. 범죄 혐의의 중대성과 북송 절차의 적법성은 구분해서 판단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피해자의 권리도 같은 무게로 살펴야 합니다. 적법절차를 강조하면서 피해자와 유가족의 고통을 주변으로 밀어내서는 안 됩니다. 진실을 밝히고 책임을 묻는 과정이 충분했는지, 증거와 진술을 검증할 기회가 확보됐는지도 중요합니다. 공정한 절차는 피의자의 권리와 피해자를 위한 책임 추궁을 함께 뒷받침합니다.

 

 공직자의 형사책임에도 동일한 원칙이 적용돼야 합니다. 정책적 판단이 논란이 됐다는 사실만으로 관련자 모두에게 같은 책임을 물을 수는 없습니다. 각자의 권한과 지시, 실제 관여 정도를 증거에 따라 구분해야 합니다. 이번 항소심에서 일부 피고인에게는 집행유예가, 노영민 전 비서실장에게는 무죄가 선고된 만큼, 개인별 판단 근거를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시민에게도 공정성의 시험은 남습니다. 내가 지지하는 정부가 같은 결정을 내렸더라도 동일한 기준을 적용할 수 있는지 돌아봐야 합니다. 정권의 이름을 가린 상태에서도 국가권력의 한계와 개인의 권리에 대해 같은 답을 내놓을 수 있어야 합니다.

 

 이번 사건이 던지는 정의의 질문은 ‘누구를 더 엄하게 처벌할 것인가’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국가가 누구에게나 설명할 수 있는 기준으로 권한을 행사했는가, 그리고 그 권한을 심사하는 재판 역시 개인별 책임을 공정하게 밝혔는가까지 이어집니다.

 

 정의의 기준은 자신의 위치와 이해관계를 떠나 공정하다고 인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공동체를 보호하고 범죄의 책임을 엄정하게 묻되, 국가 역시 법적 근거와 공정한 절차에 따라 행동하도록 요구하는 것. 이번 사건에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원칙입니다.